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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처럼 무겁게 혹은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2020)

고백하자면, 나는 경안로 프로젝트 공모를 통하여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사건’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토록 잘 모르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대부분 아직까지 주목되지 않고 있다. 전쟁과 학살, 인권 등이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여서일까. 자신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세계로 여겨지기도 하고, 이 사안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2020년도에는 인류 공동체가 동시 다발적으로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는 한 해였을 것이다. 최근의 나는 태국에서 작업을 하는 도중, 벤에 깔리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나에게 그 날의 교통사고는 많은 영향을 끼쳤고 삶과 죽음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초점을 맞춘 부분은 ‘주체성을 잃어버린 죽음’이다. 모든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고 그 끝은 동일하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학살이 그렇듯이, 비극적인 죽음 즉, 생을 다하지 못하고 정치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많은 이들의 억울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통하여, 살아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을 넘어, 우리의 삶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팬데믹 현상을 겪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말이다.

전작 중 ‘달리기’를, 즉, 달리는 행위 자체를 작업의 동력으로 사용한 작업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서, 살아있는 내 몸이 주체가 되고 재료가 되어 작업의 발판이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GPS를 비롯하여 심장박동을 체크할 수 있는 시계를 차고 다닌다. 매일 매일의 심장박동은 그 날의 건강상태, 기분, 사건사고 등 많은 환경에 아주 직접적이고 빠르게 반응한다. 나는 이 기록들을 조합하여 조형적이며 음악적인 요소로 전환하였다. 맥박의 구간별로 음계를 나누었고, 음표가 만들어졌다. 이를 토대로 악장을 만들었고, 이 악장은 다양한 형태로 연주될 수 있다.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산맥’은 악장과 마찬가지로, 심장박동 그래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조명과 어우러져서 거대한 산맥이 켜켜이 늘어서 있다.

<학살지도>는 이번 공모를 통하여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렇게 대규모적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였다. 전국의 각 지역에서 발행하는 지역신문을 모아 엮어서 지도를 만들었고 대형 지도에 학살이 일어난 지역에 돋보기와 빛을 이용하여 점을 찍어(태워) 민간인 학살지도를 만들었다. 돋보기의 본래 용도와 더불어, 이중적인 의미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택한 재료이다.

삶이란 잠시 빌려 사는 것이며, 죽음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던 장자의 초연함을 언젠가는 느낄 수 있기를 고대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

태산처럼 무겁게 혹은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 김유나展

미술중심공간보물섬


경안로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창작산실 비영리전시 공간지원을 받는 보물섬의 중심이 되는 전시다. 경안로 프로젝트는 경산의 허리, '경안로'의 이름을 빌려 미술이 지역에 초점을 맞춰 보편적 진정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보물섬의 의지를 담고 있다. 보물심의 정체성의 핵심인 경안로 프로젝트의 첫 작가로 김유나는 여전히 풀지 못한 지역 공동체의 숙제인 경산시 평산동의 코발트 광산 양민학살의 문제를 다룬다.

강한 압박을 주는 주제 앞에 고통 받았을 작가는 일상의 재료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차분한 숙고의 시간으로 변형시켰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죽음은 버림받은 죽음이다. 김유나 작가는 이를 '주체성을 잃어버린 죽음으로 부른다. 버림받은 죽음과 대비해 살아있는 심장의 박동을 그래프로 기록하고 박동의 높낮이를 음표로 옮겨 '푸른 새벽'이라는 음악을 작곡한 김유나 작가는 죽음의 엄숙함마저 무시당했던 시대의 비극을 위로한다. 작가의 어머니가 피아노로 연주한 '푸른 새벽은 돋보기로 지역신문을 불태워 만든 구멍을 통해 빛으로 아롱거리는 억울한 죽음의 현장, 겹겹의 얇은 천 너머로 보이는 산을 닮은 심장박동의 그림자와 함께 위로의 공간을 형성한다.

"태산처럼 무겁게 혹은 깃털처럼 가볍게"는 사마천의 <사기>를 여는 문장이다. 김유나 작가는 이 글을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지 않으며 공평하다고 해석한다. 김유나 작가는 지역공동체의 태산처럼 무거운 과제를 깃털처럼 가벼워 여백이 만들어지는, 고통을 넘어 '돌아봄의 시간'을 안겨주는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생각의 자리'를 위해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우며 고통 받았을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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