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서예가이다. 그 서예란 것은 어렸을 적부터 깊숙이 내게 침투했다. 흰 벽을 바라보고 묵묵히 글을 쓰는 뒷모습은 내게, 요리를 하는 모습보다 인상적이었다. 매해 신년이면 엄마는 나와 오빠에게 덕담 한 마디를 하얀 한지 위에 적어주시곤 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면서 그 많은 말들은 내 마음속에 파편처럼 각인되었고 그것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였다.
나는 그 텍스트로서의 작은 소통이, 다시 엄마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덕담과는 별개로 흘러가는 삶의 단상을 포착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엄마’이기 때문에 희생하고 양보해야하는 모습.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를 깨달고 보니, 나의 성장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겨진 채 지나온 것이 아님을 절감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 뒤에 감춰진 또 하나의 얼굴을 나는 얼마나 진정으로 마주했었던가.
이렇게 언어 즉 말들은 엄마라는 대상화된 이미지로 바뀌게 되고, 나는 그 대상(엄마)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진으로 풀고자 했다. 희망차고 사랑스런 덕담 속에 감춰진 삶의 팍팍함과 이중성이, 담담하게 때론 실소를 머금는 유머로서 받아들여지길 바랬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은 감상자의 감정이나 생활양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이해의 폭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북구 62-10번지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다. 나는 공간만이 남은 이 공간을 잠시 빌리고 싶었다. 본디 집이었고, 누군가의 비바람을 막아주었을 이 집을 말이다. 나에게 할애된 공간은 '방'으로 전치되어진다. 여기서 '방'이란, 어릴 적 살았던 방인 동시에 자궁을 의미한다. 기능과 역할은 다르지만, 나를 품어주었던 '방'임에는 확실하다.
모든 것은 박영선씨의 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